Episode 6.  Coloring balsam flowers <Price>



-
열한 살 무렵이었을까.

여름방학의 시작이었는지, 끝이었는지는 잘 기억나지 않지만
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려 마음먹은 날이었다.

그 또래 여자아이들이라면 
한 번쯤 해보았을 법한 놀이인데,

말 그대로 봉숭아꽃잎을 따다가 
백반 몇 알과 함께 있는 힘껏 꾹꾹 빻아 진액을
손톱 위에 올려둔 뒤, 빨간 봉숭아 물을 들이는 일.

그 부위를 한 나절 정도
비닐로 꽁꽁 싸 메어 둔 채 잠들고 나면,
다음날 아침 손톱에 선홍빛이
새겨지는 간단한 과정이다.

그런데 이 간단한 놀이를 딱 한 번 한 이후,
나는 그 해 여름이 다 끝날 때까지 
우울했었다.



-
처음 며칠은 별 문제가 없었다.
그런데 일주일 후쯤 지나서였을까.

물도 헹구어 먹을 것이라던 
유난스럽게 깔끔했던 열한 살의 나는 
이내 선홍빛 봉숭아 색에 질려버리고 말았다.

일기장 형식도 한 번 잘못 쓰고 나면 
앞 장을 모두 뜯어내고, 다시 써야만 하는 
나에게

아세톤으로 지워버리면 그만인
매니큐어가 아닌 

선홍빛 색이 다 지워지려면,
첫눈이 올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는 
봉숭아 물은 아주 난감한 일이었다.

하지만 이미 새겨져 버린 것이 
지워지기 위해서는

새겨지기 위해 공을 들였던 만큼의
지워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.

그래서 결국,
나는 그 해 여름 
새 손톱이 모두 자라나 그 존재를 덮어버릴 때까지

선홍빛 봉숭아 물이 처음처럼 희미해질 때까지 
기다려야만 했다.



-
열한 살의 나는 매일 밤 
이 봉숭아 물이 언제 지워지는 걸까를 관찰하다가
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.

이렇게 오래도록 이 봉숭아 물이 
지워지지 않는 이유는,
혹시 내가 얘의 모든 진을 빻고 빻아서 나에게 새겨두려 한 것 때문은 아닐까.

방향이 맞는 것일지 모를 죄책감과
일주일을 못 간채 변해버린 나의 변심에 실망해 
매일 밤 앞으로 누웠다, 뒤로 누웠다를 
반복하던 여름방학이었다.
Back to Top